된장에 호박 넣고 석석 비비면 "캬∼웰빙이 따로 없네"
열 가열하면 영양가 날아가…되도록이면 날것으로
과식은 음주·흡연만큼 위험 "밥상이여! 소박하라"
한여름은 지났지만 아직 한낮의 햇살은 따갑기만 하다. 20~30년 전 이맘때로 돌아가 본다. 한창 낱알에 살이 오르는 벼논에 들어가 잡초인 피를 뽑고, 논두렁의 잡초를 말끔하게 베다 보면 금세 땀이 옷을 적신다. 가을 무·배추를 심어놓은 밭도 매야 하고 땔감으로 풋나무를 하러 가기도 해야 했다. 일을 하고 돌아와 시원한 샘물로 몸을 씻고 나서 대청마루나 마당의 평상 위에 앉으면 저녁상이 올라온다.
밥상에는 보리밥에다 호박나물, 호박잎 찐 것, 된장, 풋고추 등이 올라 있다. 가지나물이나 박나물, 고추·부추전이 올라 올 때도 있다. 모두 밭에서, 담장 위에서 바로 수확한 것들로 장만한 음식이다. 밥에다 호박나물과 된장을 넣고 비비거나 호박잎에 밥과 된장을 싸 먹는다. 종일 군것질도 없이 일을 하다 주린 배를 채우니 꿀맛이 아닐 수가 없다. 호박을 썰어넣은 칼국수가 올라올 때도 많다. 역시 꿀맛이다. 모두들 맛있게 먹어치운다. 가끔 갈치 찌개가 올라오면 별미가 된다. 그래도 배가 출출하면 삶은 감자나 옥수수를 먹는다.
여기에 건강한 밥상, 소박한 밥상의 요소가 다 들어있다. 복잡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말 그대로 소박한 음식들이 올라 있는 밥상이다. 제철에 나는 야채나 과일, 곡물 등을 최소한의 조리를 거쳐 내놓은 음식이 소박한 음식이다. 이런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 몸이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소박한 음식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런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열심히 일하고 배가 고파야 한다.
건강한 몸을,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소박한 음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 식욕을 자극하며 먹으라고 부추기는 음식들은 삼가야 한다. 포만감을 느낀 후에도 타락한 미감을 자극해 건강에 안좋은 것을 포식하게 하는 음식이 좋을 리가 없다. 음식이 필요 이상으로 입맛을 돋울수록 더 많이 소비되고 건강에도 더 해롭게 된다. 맛 좋은 것을 찾는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하기 위해 지나치게 조리된 음식을 과식하는 것은 흡연이나 음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생리적 욕구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락(道樂)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밥상'의 저자 헬렌 니어링은 "음식은 소박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또 날 것일수록 좋고, 섞지 않을수록 좋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준비가 간단해지고 조리가 간단해지며, 소화가 쉬우면서 영양가는 더 높다. 물론 건강에 더 좋고, 돈도 많이 절약된다"고 말한다.
소박한 밥상, 건강한 음식은 가까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재료들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즉 제철에 나는 채소나 과일이 제격이다.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나 주변의 농산물을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소박한 밥상이다.
그리고 조리는 최소한에 그치는 것이 좋다. 날것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그대로 먹는 것이 영양가도 손상되지 않고 건강에도 좋다. 헬렌 니어링은 "익히거나 통조림한 것, 냉동한 음식은 방부제를 넣은 죽은 음식이다. 이것들은 몇 가지 열에 저항력이 있는 요소를 함유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효소는 다 파괴되어 버린다.
조리는 파괴하는 것이요, 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육식보다 채식 위주의 음식이 건강한 음식이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직접
기른 생야채와 과일, 곡물, 견과류를 위주로 한 채식으로 늙어서도 거뜬히 농사를 지으며 건강하게 사는 사례들은 이를 잘 말해준다. 과일과 야채를 먹는 것이 치아, 소화기관, 손, 발 등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에도 더 일치하며, 위생적으로도 신선한 야채나 과일이 더 안전하다.
소박한 음식은 과식을 하지 않게 하고 음식의 제맛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영양도 골고루 섭취할 수 있고, 건강한 미각을 유지하게 한다. 바로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음식이다.
◇촬영협조= 대구시 동구 신천동 '거창할매식당'
시원 담백 깔끔
사·찰·음·식 그 맛의 비결은
사찰음식은 '소박한 밥상' 음식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수행자들의 음식인 사찰음식은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계율 해석상 차이는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대승불교에서는 엄격하게 요구하는 계율이다. 그리고 채소 중에 파, 마늘, 부추, 달래 등 오신채는 사용하지 않는다. 몸에서 냄새가 나며 수행을 방해하는, 성내고 탐내는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아 시원하고 담백하며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스님들이 즐겨 먹는 산채는 약리작용을 지닌 것들도 많다. 그리고 제철에 나는 재료를 사용하므로 철에 맞는 음식이 발달돼 있다.
사찰음식은 지방별·사찰별로 고유의 음식이 발달해 왔다. 경기도와 충청도의 사찰에서는 잣을 이용한 백김치·보쌈김치·고수김치가 유명하고, 전라도에서는 들깨죽을 이용한 고들빼기김치·갓김치·죽순김치가 발달했다. 경상도에서는 호박죽과 보리밥을 주로 이용한 콩잎김치, 우엉김치, 깻잎김치 등이 유명하다. 통도사는 표고밥·가죽김치·가죽전·가죽튀각·녹두찰편이, 해인사는 산동백잎부각·머위탕·송이밥·솔잎차가 유명하다. 대흥사는 동치미가 널리 알려져 있다.
사찰음식은 오신채를 안 쓰고 무엇으로 맛을 낼까. 맛을 내는 대표적 재료 몇 가지를 소개한다.
◇콩가루= 날콩이나 볶은 콩가루를 조미료로 사용하고 있다. 날콩가루는 국이나 찌개에 넣으면 담백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아 좋고, 볶은 콩가루는 나물 무칠 때 넣으면 나물 맛이 훨씬 고소해진다. 특히 콩가루는 단백질이 부족해질 수 있는 사찰음식에 중요한 단백질원이기도 하다.
◇다시마= 사찰음식의 가장 중요한 조미료라 할 수 있다. 말려서 곱게 빻아 조림이나 찌개 등을 만들 때 조미료로 사용한다.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철의 함량도 쇠고기의 2배 이상 높아서 빈혈 예방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다시마를 불로초라고 부른다. 다시마를 우려낸 국물도 조미료 역할을 한다. 건져 낸 다시마는 다시 간장에 조려 반찬으로 쓴다.
◇산초= 산초는 향을 내는 가장 중요한 향신료이다. 산초 열매의 껍질을 말려 가루로 만든 후 김치를 만들 때, 찌개나 된장국을 끓일 때 넣으면 맛깔스러운 별미가 된다. 산초는 특히 자극성 있는 맛과 신선한 향기로 식욕증진을 위한 요리에 이용된다. 산초의 잎과 열매를 이용한 음식은 향기가 특별해서 된장국과 장떡에 넣으면 맛이 일품이다.
◇표고버섯= 찌개, 볶음 어디에 넣어도 손색없는 천연 감미료이다. 사찰에서는 일절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는 대신 표고버섯가루를 넣어 깊은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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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