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오늘은 잔업이 없는 수요일이라서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저녁을 맞고 있나요? 그동안 쉴틀없이 일하느라 가족들 얼굴 자세히 본 지도 꽤나 오래됐죠? 오늘은 가족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웃는 형수님을 위해 돼지갈비라도 한 근 굽길 바래요.
형! 저는 이번주가 야간이잖아요. 그래서 아침부터 야간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이 있어 서울엘 다녀왔습니다.
"비정규직 노조 총파업 결의대회"를 현장에 있는 동지들과 함께 갔다가 조금전에 평택에 도착했습니다.
'총파업' '결의대회' '투쟁'이런 말에 대해 형은 항상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죠? '나도 예전에 많이 했다고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변했으니 표현도 좀더 점잖게 변할 순 없겠느냐고' 그래서 저도 많이 고민은 합니다만, 제 머리가 좋지 않아서인지 세상이 아직 변한게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딱히 폼나고 점잖은 표현이 많이 생각나진 않네요. 그래서 그냥 아는 단어 쓸테니 너무 인상 찡그리고 보진 말아주세요.
형! 형이 예전에 새마을 기차 타고 저랑 부산 내려갈 때 여승무원들이 이쁘다며 자꾸만 힐긋 힐긋 돌아보던 것이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형이 봤을 그 여승무원들이 다가올 12월 31일부로 짤린답니다. 이유요? 계약직이라서요. 그런 다음 그 자리에 다른 계약직 여승무원 31명을 다시 채운다네요. 저는 자세한 내막은 잘 몰라요. 하지만 여승무원들이 이쁘다며 형이 자꾸만 뒤돌아봤을 그 여승무원이 이제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드릴려고 이렇게 과거까지 얘기하네요.
형! 요즘 날씨가 쌀쌀하죠? 집에 보일러는 잘 돌아가요? 6년전이던가요? 한 겨울에 보일러 터져서 고생하던 형과 아이들과 형수님이 오돌오돌 떨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네요. 그런데 얼마나 좋아요 이제는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아파트에 사시니까요.
형! 제 친구중에 방글라데시 친구 있는 거 아시죠? 그 친구들이 이제까지 370일이 넘도록 명동성당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투쟁하다가 그 투쟁을 접고 전국적으로 싸움을 키운다고 합니다. 소위 이주노동자 친구들 말예요. 형도 접때 저랑 명동성당가서 별로 드릴건 없다고 하시며 만원짜리 몇장 모금함에 넣었던거 기억나죠?
그 친구들이 370일 넘게 싸우면서 오돌오돌 떨었던것은 날씨때문만은 아닌것 같드라구요. 그렇다고 검거 단속 때문만도 아닌것 같아요.
우리들이 따뜻하게 감싸주기만이라도 했다면, 우리 노동자들의 넓고 따뜻한 가슴 한 번만이라도 내밀어 주기만 했다면....
형! 그 친구들이 전국을 돌며 노동허가제 쟁취하자고 할때. 형! 따뜻한 커피 한잔과 형의 우악스런 손 한번 내밀어 줘요. 피부색깔이 차별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진 않잖아요.
형! 출근해야합니다.
오늘 1000명 정도 인원이 서울에 모여서 외친게 있어요. '비정규직철폐'라는 말이었지요. 너무 흔해서 이제는 식상하죠? 간부되는 분들은 삭발식도 했어요. 그리고 구속해고결단식까지하며 총파업 반드시 성사시켜서 비정규직 차별을 박살내자고 했어요.
그런데 형! 그분들의 투쟁의 각오가 아무리 비장한들 형이 함께 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것 같아요.
예전에 다 해본거니까 형이 이번에 한 발만 앞으로 내밀어줘.
형 다음에 또 쓸께요. 몽뚱이가 재산인 우리들입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챙기십시오.
추신 : 오타는 제가 독수리라, 그리고 교정 시간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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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
형! 오랜만에 형에게 글을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