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
민주노총 선거와 대사업장 현장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역시 상층 관료들만의 잔치였다. 유덕상이나 이수호가 어떤 과정을 거쳐 후보로 나오게 되었는지부터 현장노동자들은 알 수가 없다. 후보 추대부터 상층부 선거 브로커들의 밀실 담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장노동자들이 듣도 보도 못한 무슨무슨 ‘전략연구소’니 ‘전국회의’니 무슨무슨 ‘포럼’이니 하는 데들에서 후보를 결정하여 추대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아마 노조운동 상층부들이 끼리끼리 만든 파벌 조직일 게다. 그러니 이런 상층 파벌 조직에 속하지 못하는 현장활동가는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나가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상황이다.
상층부들만의 잔치
후보 추대는 그렇다 치고 한 표를 행사하는 대의원들은 어떠한가? 그들 역시 대다수가 이런 파벌 조직에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결국 ‘조직 선거’라고 하며, 극소수의 부동층 대의원을 어느 쪽이 끌어당기느냐에 의해 판가름 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굳이 이런 소문들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민주노총 파견 대의원들이 대부분 상층 관료들이라는 것은 대의원 구성만 확인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다. 70% 이상이 연맹 상근간부들과 대공장의 전현직 집행간부 출신이다.
물론 현중이나 한통처럼 민주노총 파견 대의원이 단순히 노조관료를 넘어 자본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노골적인 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자본의 세력들을 노조관료라고 한다면 관료들에게는 실례가 될 것이고 어용들에게는 과분한 대우가 될 것이므로 양자를 구별해 줄 필요가 있겠지만, 그러나 이 상층 기구의 선거에서는 그 같은 구별이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단사로 내려오면 아직 양자가 어용 세력과 ‘민주파’라는 이름의 관료적 운동세력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할지 모르지만, 민주노총 선거에서는 관료들이 이 어용 대의원들을 서로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어용 세력에 대한 그 나마의 차별성조차 무의미해 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관료들의 노사협조주의적 퇴락이 갈 데까지 갔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어쨌건 대다수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의원들이 현장 조합원들을 대변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현장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도록 강요당하고 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철저히 ‘즈그들만의 잔치’인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향방을 가름하는 ‘좌우’ 대결?
양 진영의 피 튀기는 선거 공방을 보면 마치 누가 되느냐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의 운명이 갈릴 것 같은 모습이다. 화해할 수 없는 좌와 우의 결정적인 노선 대결이나 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양쪽 진영의 세력들을 보면 모두 정리해고에 직권조인을 하거나 총파업을 철회하고 백기투항에 직권조인을 하는 등 노동자를 배신한 데서는 매한가지인 세력들이다.
물론 선거 쟁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 후보의 논쟁을 보면 확실히 차이가 있다. ‘좌파’를 자임하는 유덕상 후보가 표방하는 말에서 이수호 후보보다 더 좌쪽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말’에서일 뿐이다. 유덕상 후보의 그 '좌‘라는 것은 구체적인 실천을 강제 받게 되는 현장으로 내려오면 완전히 허구적인 것으로서 관료적 본질을 가리는 포장에 불과함이 드러난다.
유덕상이 민주노총 임원으로 있으면서, 출신 사업장인 한통에서 어용 집행부들이 조합원들을 거리로 내몬 사측의 구조조정에 합의해 준 데 대해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 한통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규직 어용노조가 고립, 파괴한 것에 대해 유덕상이 비판했다는 이야기도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양 후보 진영간에 떠들썩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고 엄청난 차이나 있는 것처럼 공방이 오고 가고 있지만, 기실 지도부의 배신이나 관료주의 같은 민주노조운동의 진정한 쟁점은 철저히 회피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민주노총 선거가 그러한 문제들을 은폐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말 문제는 ‘그 놈이 그 놈이고, 누가 되든 마찬가지이므로 선택의 여지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가리고 문제의 지점을 엉뚱한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현장은 자본이 완전히 장악하여 어용을 내세워 조합원들을 통제하고 있거나 아니면 현장으로부터 자립한 관료적인 운동만이 횡행하여 자본의 현장 장악이 시간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들을 철저히 피해 가고 있는 상층부 선거를 가지고 마치 운동 판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기만이 아니면 현실 백치증일 것이다.
유덕상의 패배가 “한국 노동운동의 패배”인가?
이런 모습은 유덕상이 패배하자 ‘한국 노동운동의 패배’라고 하며 통탄해 하는 평등연대 같은 상층 좌파운동 세력한테서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운동의 패배가 있다면 대사업장에서 관료적 운동세력으로 전화한 ‘민주파’에 의해 관료주의와 노사협조주의가 판치면서 현장이 무너졌고 그 틈을 타 자본이 현장을 완전히 장악하였거나 급속히 장악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미 몸통 속에서 간을 좀 먹어 들어가는 암에 대해서는 그 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그 하나의 증상으로 얼굴에 나타난 황달을 놓고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또 다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행위일 따름이다.
이것은 역으로 유덕상이 당선되었다면 ‘한국 노동운동의 승리’라는 이야기인데, 현장은 어떻게 되든 간에 상층만 장악하면 된다는 관료적 운동 세력다운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평등연대처럼 노골적으로 말만 안 했을 뿐, 이미 ‘범좌파’ 후보를 옹립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노힘이나, “유덕상에게 표를” 찍으라고 하며 지지 입장을 표명한 ‘다함께’ 또한 유덕상의 패배를 ‘한국 노동운동의 패배’라고 느낄 것이다.
유덕상의 패배는 노동운동의 패배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것은 노동운동 상층 관료집단 내 한 파벌의 패배일 뿐이다. 이른바 중앙파나 좌파, 또는 ‘범좌파’가 패배했다고 현장이 더 무너지는 것도 아니며 국민파가 승리했다고 관료주의와 배신이 특별히 더 기승을 부릴 것도 아니다. 어차피 관료주의와 배신은 갈 데까지 갔다. 지금 누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된다고 해서 달라질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총연맹 - 연맹- 대공장 노조의 관료주의 커넥션
그간 민주노총과 연맹 등 상급단체 노조운동이 대중으로부터 자립하고 관료화하는 경향을 강화시켜 왔지만, 대공장 노동운동 제세력들과는 매우 긴밀히 밀착함으로써 노조관료 커넥션을 형성하고 정파적 운동 라인을 구축해 왔다.
계급투쟁에서 상급단체 노조운동의 배신을 주도하고 조장하는 것은 상급단체 노조관료 그 자체가 아닌 대공장 단사의 기회주의 운동세력과의 결합을 통해서였다. 대공장 단사 노동운동이 상급단체 노조운동의 이념·조직·재정 등 실질적 토대임이 명확히 드러나 왔다. 이른바 국민파, 중앙파, 좌파라고 하는 세력들을 보라. 그 골간대오는 모두 대공장의 현장조직들이다.
한편 투쟁을 촉발시키고 선도할 수 있는 동력 또한 대공장 단사의 조직된 노동자계급이어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히 전개된 IMF 이후에도 계급투쟁의 전선을 완강하게 쳐내는 대중 동력은 여전히 대공장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대공장의 관료적 운동세력은 생존권 사수의 열망으로 떨쳐 일어선 조합원 대중의 투쟁동력을 갉아먹고 무너뜨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조합원들을 피멍들게 한 회사 살리기, 투쟁동력을 갉아먹는 양보교섭, 투쟁동력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기만적인 잠정합의 및 총회 전술과 무쟁의·노사화합선언 등 온갖 책략과 배신이 대공장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들의 의해 개발되고 자행되었다.
자본의 현장 장악과 어용의 득세에 길을 열어준 ‘민주파’ 활동가들
98년 현자 정리해고 저지투쟁 이래 대부분의 투쟁이 패배로 끝나면서 이제 대공장에서 현장권력의 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이 파괴되었거나 무너져가고 있고 사측의 통제가 구석구석 안 미치는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장은 이미 87년 이전을 방불케 하는 현장통제로 피 말리고 있다. 자본은 폭력과 회유, ‘합법적인’ 손배·가압류와 ‘부당’노동행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현장 탄압을 더욱더 강화하고 있다. 자본의 현장 장악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까지 왔다.
그러나 대공장에서 자본의 현장 장악은 노조관료와 기회주의 운동세력의 방조와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자본은 이들 기회주의 운동세력의 투쟁회피와 타협주의와 노사협조 아래 노동과정을 폭력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였다.
자본은 자신의 손에 피를 적시지 않고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의 손을 빌어 노동착취와 현장통제를 강화하였다. 이미 IMF 이전부터 현중과 대우조선이 그러했고, 공공부문에서 한통과 지하철이 그러했다. 98년 이후 현자와 기아에서도 동일한 과정이 진행되어 왔다.
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은 현장권력 파괴 기도와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에서의 패배는 정리해고와 고용불안 및 단협개악 등 생존권의 말살과 노동조건의 후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현장의 질서가 사측의 통제 아래 전면적으로 재편되는 것을 수반하였다.
어용 세력의 득세는 이처럼 자본의 현장 장악 속에서 부수적으로 따른 것이었다. 결국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이 어용의 득세를 불러들인 셈이다.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이와 같이 자본이 대공장에서 구조조정을 관철하고 현장 질서를 재편하는 것이 그토록 단시간 내에 거침없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공장 현장에서부터 관료와의 투쟁이 강화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임원선거 결과를 놓고 운동의 패배 운운하면서 소란을 떠는 것은 이러한 자본의 현장 장악이라는 진짜 위기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드는 바람잡이 행위이다. 이 위기의 근원은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이 지배하는 대공장 현장의 운동질서이다.
이 최악의 내부 장애물인 대공장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과의 투쟁이라는 과제를 올바로 수행해내지 못한다면 필시 자본의 현장 장악과 어용의 득세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게 된다. 대공장에서 자본과의 투쟁과 관료와의 투쟁을 통일적으로 수행하면서 현장의 힘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 대사업장에서 자본의 현장 장악으로부터 현장권력 탈환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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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민주노총 선거는 상층 관료들만의 잔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