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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21:59:21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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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동자’ 실태 조사


















특집❶‘쌍용차 노동자’ 실태 조사






고제규·임지영 기자



용자동차 사태로 해고된 이수영씨(가 명)는 요즘 상조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2월26일 토요일, 이씨는 평택의 한 장례 식장에 일감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일을 하러 갔다. 그러나 이날 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 다. 손은 떨렸고 가슴이 저리고 울렁거렸다.



이날 그가 맡게 된 장례식 영정에는 무표정 한 옛 직장 동료 사진이 걸려 있었다. 쌍용자동 차 파업을 전후해 13번째로 숨진 임 아무개씨였 다. 임씨의 부인은 지난해 4월 우울증을 앓다 자살했다. 그 뒤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임 씨도 1년 만에 숨진 채 고등학생 아들에게 발견 된 것이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자녀는 파업 이후 부모를 잇달아 잃었다.



임씨의 장례식장에서 일을 하던 이씨도, 조 문을 온 옛 동료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세 자녀 의 아버지인 이씨는 “상주인 고등학생이 영정 사 진을 붙들고 우는 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미어지 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 자신도 한때 공 황장애 판정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 도 ‘답답하고 억울해’ 철길로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는 “(죽음이) 남 일이 아 니다”라며 중얼거렸다.



이씨가 눈물을 훔친 지 이틀 만인 2월28일 이번에는 희망퇴직자 조 아무개씨가 창원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14번째 죽음이다.



단일 사업장에서 파업을 벌인 뒤 노동자나 그 가족이 14명(자살 8명)이나 잇달아 숨진 것 은 보기 드문 ‘사건’이다. 도대체 누가, 왜, 무엇 이 이들을 죽음의 행렬로 이끄는가? <시사IN> 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와 함께 긴급 실 태 조사를 벌였다. 무급 휴직자를 포함해 정리 해고자·징계 정직자·희망퇴직자 등 ‘공장 밖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다. 정리해고자 136명, 징계 해고자 41명, 정직자 14명, 무급 휴직자 457명, 희망퇴직자 67명 등 노조가 연락이 닿 는 715명을 대상으로 했다. 지난 3월1∼2일 이 들을 상대로 전화로 조사를 벌인 결과 401명이 응답했다.



해고자들의 자살 충동이 가장 높아



<시사IN> 조사 결과 15번째·16번째 희생자 가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조사에 응한 10 명 가운데 5명이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라고 답했다. 자살 충동을 ‘가끔 느낀다’가 140 명(34.9%), ‘자주 느낀다’는 답변도 62명 (15.5%)이나 됐다. 조사에 응한 절반 가까이 되 는 202명(50.4%)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자살 충 동을 겪은 셈이다.



특히 다른 집단에 비해 해고자들 사이에 자 살 충동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사에 응 한 해고자(징계 해고자 포함) 122명 가운데 75 명(61.5%)이 자살 충동을 한 번 이상 느꼈다고 답했다. 희망퇴직자나 무급 휴직자에 비해 유독 해고자 집단의 자살 충동이 높은 건 ‘삼중 폭탄’ 때문으로 풀이된다. 해고자는 ‘실직 폭탄’에 따 른 ‘생활고 폭탄’뿐 아니라 ‘소송 폭탄’까지 연달 아 맞았다.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높이 70m짜리 굴뚝 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김을래씨도 파업 뒤 감옥살이뿐 아니라 삼중고에 시달렸다. 회사와 경찰, 그리고 회사에 보험료를 지급하고 대신 파업 노동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메리츠화재 가 낸 손해배상 소송까지 모두 3개 소송 폭탄을 맞았다. 손해배상 소송에 앞서 집이나 퇴직금 등 재산이 먼저 가압류되었다. 김씨는 “내 이름 으로 통장을 가질 수도 없다. 빚을 내서 뭘 할 수도 없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 다. 심지어 그는 해고당했지만 실업급여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월급 통장에서 꼬박꼬박 고 용보험료가 빠져나갔지만, 정작 해고당하자 보 험은 무용지물이었다. 파업 뒤 구속되어 5개월 간 옥살이를 한 게 발목을 잡았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해고되면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된 다는 사실을 김씨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삼중고에 시달리고,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 김씨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 다. 그는 요즘도 소주 세 병을 먹고 자거나 약을 먹고 잔다. 깊은 수렁에 빠진 낭패감이 깊어가 던 지난해 1월20일 그는 “바람 좀 쐬고 오겠다” 라며 집을 나섰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묻힌 강 원도에 있는 산소를 혼자 찾아갔다. 절을 올리 고 미리 준비해간 밧줄을 매만졌다. 불길함을 직감한 아내가 전화로 고향 친구들에게 알려 친 구 10여 명이 달려와서야 그의 ‘극단적인 선택’ 을 막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숨진 14명 가운데 자살자는 8명이 다. 자살자 가운데 아내들이 2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부부가 모두 속앓이를 하는 것은 쌍용자 동차 파업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파업 당 시 정부는 뒷짐을 진 채 구사대와 파업 노동자 들이 서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물리적 충돌을 방치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은 적이 되었고, 아내들도 언니·동생 사이에서 한순간에 데면데면한 사이로 바뀌게 되었다.



한 무급 휴직자의 아내는 “오늘 아침에 남편이 동료(임 아무개씨) 죽음 소식을 듣고 침울해 있다. 나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지역이 좁다보니 쌍용차 다니는 이웃집과 비교가 되고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라고 말했다. 파업 당시 가족대책위원회를 이끌었던 이정아씨도 “이제 쌍용자동차라는 말은 우리 동네에서는 ‘금기어’가 되었다. 아내들끼리 수다라도 떨며 상처를 나누면 스트레스가 풀린 텐데 누구도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회사 사람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지 않으려고 계단을 이용하는 해고자나 무급 휴직자 아내도 많다”라고 전했다.



불투명한 복직 때문에 스트레스 심해져



공장 밖 노동자에게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예상대로 복직 전망 불투명이나 생계비 부족 등 먹고사는 문제를 주로 꼽았다. 이번 조사에 응한 응답자는 연령대별로 따지면 40대가 230명(57.4%)으로 가장 많다. 30대는 145명(36.2%)이었고, 50대는 25명(6.2%)이었다. 쌍용차 사태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 대부분이 본격적으로 자녀 교육비나 양육비로 돈이 들어갈 ‘3040 가장’이다. 이들은 복직 전망 불투명(296명·73.9%), 생계비 부족(292명·72.8%), 일자리(232명·57.9%) 순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먹고살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144명(35.9%)은 가정불화를 겪기도 했다.



집단별로 주요 스트레스 원인을 살펴봤더니, 무급 휴직자는 복직 전망 불투명(186명·78.5%) 때문에, 징계자 역시 복직 전망 불투명(10명·80%) 때문에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했다. 반면 해고자는 생계비 부족(95명·77.9%)을, 희망퇴직자는 일자리(19명·59.4%)를 주요 스트레스 원인으로 꼽았다.



파업 이후 심리 치료 프로그램이 없지는 않았다. 정부는 2009년 평택시를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심리치료센터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심리 치료를 받은 사람은 450명에 불과했다. 이정아 가족대책위 위원장은 “파업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집 안으로 숨어버렸다. 같이 파업의 기억을 공유하는 자체도 꺼리고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도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스트레스를 악화시키는 건 매일 매일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 물었더니, 300명(74.8%)이 ‘일용직 등 사실상 무직 상태’라고 답했다. 22명(5.5%)만이 정규직에 재취업을 했고, 56명(14%)은 보험사 영업사원 등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했다. 23명(5.7%)은 PC방이나 당구장 등 창업을 했다. 이는 정부가 발표한 통계와는 다른 대목이다.



‘쌍용차 출신’ 꼬리표 탓에 취업 어려워



2009년 8월11일 노동부는 1994년 고용정책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처음으로 1년 동안 경기 평택시를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사업주가 쌍용자동차 출신뿐 아니라 평택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노동자를 채용하면 임금의 절반을 정부가 1년 동안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쌍용차 희망퇴직자·해고자 2652명 가운데 749명(28.2%)이 재취업을 했고, 188명(7.0%)이 자영업으로 창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현재 몇 명이나 고용이 유지되고 있고 창업을 했는지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정부나 자치단체는 한 곳도 없다. 현황 파악을 담당한 평택고용지원센터 관계자는 “실업급여 지급 기간인 최장 8개월이 지나면 우리도 알 수가 없다. 현재 취업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곳은 아마 노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쌍용차 출신들이 잇달아 숨지면서 우리도 다시 상황 파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 발표와 달리 쌍용차라는 꼬리표가 이들의 재취업 길을 막기도 한다. 해고자 홍 아무개씨는 “거짓말 안 보태고 지금까지 이력서를 100군데 넣어봤다. 쌍용차 해고자라는 이력 때문인지 한 군데서도 전화를 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재취업이 어려워지고 생계가 힘들어지면서 사람을 피하고 삶을 비관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무급 휴직자 김 아무개씨는 “구직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을 자주 한다. 자살한 사람들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김씨 같은 무급 휴직자는 ‘경계인’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재취업을 할 수도,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간혹 무급 휴직자 가운데 정규직(13명)이나 비정규직(29명)에 재취업을 하지만, 이마저도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이뤄진 경우다. 무급 휴직 기간에는 이중 취업이 금지되기 때문에 재취업은 쌍용차를 퇴사해야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이번 조사에 응한 무급 휴직자 237명 중 185명(78.1%)은 일용직 일을 하고 있었다.



무급 휴직자는 실직 상태가 아니어서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2월28일 숨진 채 발견된 임 아무개씨도 무급 휴직자여서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임씨의 통장 잔고는 단 4만원이었다. 무급 휴직자 김 아무개씨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어 휴직하면서 퇴직금 중간 정산을 신청했는데 한 푼도 안 나왔다. 살길이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 아무개씨처럼 무급 휴직자 중에는 버티다 버티다 스스로 희망퇴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김씨는 “기약 없는 날을 그냥 기다릴 수가 없어 희망퇴직을 했다. (쌍용차) 생각도 하기 싫다”라며 답변 중간에 전화를 끊었다. 무급 휴직 상태라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지만, 이들은 정작 회사로부터 어떤 지원이나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연말 성과급 1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무급 휴직자는 제외되었다. 2009년 8월 노사 합의서에는 “무급 휴직자는 1년 경과 뒤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며 실질적인 방안으로 주간 2교대를 실시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약속한 1년이 지난 지난해 9월 회사는 ‘생산 물량’이 따라주지 않아 여력이 없다며 복직을 미뤘다.



절반 가까이가 월 100만~200만원 벌어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배우자들도 맞벌이에 나섰다. 조사에 응한 기혼자 가운데 189명(58.3%)의 배우자도 일을 하고 있었다. 배우자의 일자리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로 마트나 식당 등 아르바이트 일자리(74명·18.5%)가 많았다. 남편도 아내도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가계 소득은 100만~200만원인 경우가 191명(47.6%)이었다. 100만원 미만도 114명(28.4%)이나 되었다.



이번 조사에 응한 노동자 가운데 자녀가 두 명인 4인 가구가 202명(50.4%)으로 가장 많았다. 자녀가 한 명인 사람은 70명(17.5%), 자녀가 세 명인 이는 34명(8.5%)이었다. 4인 가구 기준으로 올해 최저생계비는 143만9413원이다. 최저생계비가 실제로는 ‘최저 생존비’인 점을 감안하면, 100만∼200만원을 버는 ‘공장 밖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했다.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조 아무개씨는 “아이들 학습지부터 줄였다. 빠듯하게 쓰지만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 통장은 마이너스다”라고 말했다. 자녀가 자라면서 교육비 등 돈 쓸 곳이 많은 ‘3040 가장’들에게 실제로 씀씀이를 물었더니 200만∼300만원 지출이 146명(36.4%)으로 가장 많았다. 100만∼200만원을 쓴다고 답한 경우는 141명(35.2%)이었다. 지출이 수입을 초과한 경우가 적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장 아무개씨처럼 카드 돌려막기로 급전을 막는 경우가 흔했다. 숨진 임 아무개씨도 카드 빚이 150만원이었다. ‘돌려막기’를 하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응답자도 43명(10.7%)나 되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일을 하는 한 휴직자는 “일당 7만∼8만원짜리 일용직도 한 달 내내 일이 있으면 사정이 나은데, 일이 없는 날이 더 많다. 월말에 급하니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무급 휴직자 김 아무개씨는 파업 이후 이사를 네 번 다녔다. 전세 값을 빼 생활비로 충당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3500만원짜리 전세를 살다, 지금은 보증금 2000만원에 월 25만원짜리 월세로 갈아탔다. 김씨처럼 파업 이후 집을 팔고 전세를 살거나 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탄 경우가 52명(13%)이나 되었다. 36명(9%)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가 팔고 전세로 옮겼다. 16명(4%)은 전세에서 값이 싼 월세로 갈아탔다. “주택 보유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답을 한 응답자 가운데 일부는 집을 팔려고 내놓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해고자 이 아무개씨는 “생활비 때문에 집을 팔려고 했는데 주택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장 밖 노동자들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집을 팔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건 실업급여 외에 정부 지원책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를 포함해 정부 지원금을 얼마나 받았는지 물었더니 247명(61.6%)이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된 무급 휴직자와 징계 해고자 등이다. 월급의 절반 가까이 받는 실업급여는 117명(29.2%)이 500만원∼1000만원 미만을 받았다고 답했다. 25명(6.2%)은 500만원 미만을 받았다고 했다. 이창근 쌍용자동차 노조 기획실장은 “실업급여는 길어야 8개월 정도 받는다. 실업급여 수혜 기간이 지나 생계가 막막한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이건 사회적 타살이다”라고 말했다.



“제발 우리를 놔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응답자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주관식으로 물었다. 해고자든 무급 휴직자든 희망퇴직자든 가리지 않고 145명(36.2%)이 ‘복직’이라고 답했다. 나머지는 일자리나 자녀 교육비 제공 등 먹고살 대책을 바랐다. 애초 이 질문은 ‘복직’ 문항을 넣어 객관식이었다. 응답자 100%가 아마 복직으로 답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주관식으로 바꾸었는데, 역시나 ‘복직’을 절실하게 꼽았다. 복직은 너무 먼 바람인지, 전세 자금을 가압류당한 해고자 강 아무개씨는 “가압류만이라도 풀어줬으면 좋겠다. 제발 우리를 놔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복직을 바라는 조 아무개씨는 숨진 임 아무개씨와 7년간 같은 부서에서 일했다. 지난 2월26일 그는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가 문상을 가며 손수 운전한 차는 쌍용자동차 엑티언 스포츠였다. 회사를 살리려고 산 차의 할부금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복직의 꿈을 안고 조씨는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당을 벌어 남은 할부금을 갚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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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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