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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08:03:25
노동조합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1박 2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1박 2일!

[인터뷰] '승리주' 반드시 마신다
                                                                          (필자:박원종)

지난 26일, 용역을 앞세워 기습적으로 공장에 진입한 사측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치열한 공방이 이틀 만에 일단락 됐다. 그리고 용역과 구사대들이 빠져나가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공장 안 공기에 짧지만 달콤한 여유가 찾아왔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던 지난 1박2일, 그 이야기들이 오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사이에 슬쩍 끼어들었다.



용역과 구사대들이 물러갔지만, 만의 하나에 대비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규찰을 돌고 선봉대와 대기조를 배치하고 있었다. 복지관 앞에서 밤새 대기조 역할을 맡은 조립1팀 의장1과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1. 정리해고

그들은 처음부터 강하지는 않았다. 노동자들에겐 사망선고와도 같은 정리해고 명단을 무기삼아 희망퇴직을 종용하는 사측의 얕은 수는 절박한 노동자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40일 가까이 파업을 이어가고 있고, 용역과 구사대의 침탈을 막아냈다.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을 거듭했던 그들을 지금의 상황으로 오게 한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측은 노동조합이 원래 이렇게 강성이 아니었는데, 외부세력이 배후를 조정하고 있어서 이렇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희망퇴직, 사실 쓸려면 벌써 썼을 거예요. 처음엔 쓰고 나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공장에 들어와 보니까 너무 열 받는 거예요. 어떻게 된 정리해고가 기준이라는 것도 없어요. 저는 이유가 총각이라는 거래요. 그런데 누구는 함께 다니던 가족 전체가 다 잘리고, 누구는 다 살아남고, 누구는 연봉이 비교적 높아서라고 하고…. 다들 천차만별이에요. 그 이유들이 정당하고 공정하다면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왜 내가 스스로 그만 둬야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든 이기든 끝까지 한 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공장에 남았어요.”

“사실 저는 해고 되도 먹고 살 길은 있어요. 그래서 친척 어른들이 다들 그만 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그냥 희망퇴직서를 쓸까도 고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사측의 태도가 저를 열 받게 했어요. 제가 ‘정리해고 명단에 내가 있냐? 기다 아니다 확실하게 얘기 해달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대답이 ‘너는 지금은 명단에서 빠졌는데, 인사고가 점수가 부족하다’고 애매하게 둘러대는 거예요. 사실 그 얘기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희망퇴직 하라’는 의미거든요. 또 하나는 주변에서 ‘쌍용자동차, 다 망한 회사인데 왜 미련을 못 버리고 그러냐’고 많이들 그러더라구요. 그러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반드시 이겨서 그들에게 당당하게 나의 공장도 나의 고용도 망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대공장이 대부분 그러하듯 쌍용자동차에도 가족이나 친인척이 함께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가 많다. 한 조합원은 형과 함께 회사에 다니다가 둘 다 정리해고 명단에 올랐고, 지금도 함께 공장안에서 싸우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운명에서 같은 싸움을 함께 하고 있으니까.

“별의 별 경우가 다 있어요. 삼형제가 소위 말하듯이 다 살아남은 집도 있고, 또 다 죽은 집도 있어요. 그 중에서도 좀 난감한 경우는 친척이 같이 다녔는데, 시쳇말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은 거죠. 가족이 만나면 서로 말을 못한다고 그러더라구요. 서로 얼굴 보기도 부담스러운 거죠. 사측에서는 계속 이간질하고 노동자간의 싸움으로 몰고가는 상황에서 서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2. 산 자와 죽은 자

짧게는 5년, 길게는 1~20년을 함께 일해 온 노동자들이 상반된 입장으로 마주 섰다. 일부 언론에서는 ‘노노간의 갈등’이라고 떠들었고, 그 속에 정부와 자본의 책임과 의무는 조용히 잠자고 있었다.
사망선고를 받은 공장안 노동자들은 함께 일해 온 동료들과 마주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필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들은 사람보다 이윤이 더 중요한 세상을 살아가는 같은 노동자였을 뿐이었다.

“처음 사측이 ‘파업반대’ 집회를 시작했을 때, 거기에 참석한 아는 동료와 눈이 마주쳤어요. 그런데 서로 너무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어요. 그러니까 다들 고개를 많이 숙이고 있더라구요. 그걸 보고서 돌아서는데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라구요.”

"처음엔 한마디로 배신감뿐이었죠. 얼마 전까지 같이 일하던 동료였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측의 강요 아래 자신도 해고될 수 있다는 현실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럴까 싶어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요."

"저도 물론 그들의 사정을 이해는 하면서도 너무 섭섭하기도 해요. 어쩔 수 없이 동원은 됐어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너무 하는 것 아니에요? 앞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싸움을 걸고, 옆에 사람 부추기면서 욕하는 걸 보면서 정말 너무 서운했어요."

"저는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시던 분들은 그래도 이해가 돼요. 하지만 경영자와 관리자들은 도대체 뭘 했습니까? 직원들을 강제로 동원해서 우리들을 이간질하고, 싸움을 부추겼잖아요. 그렇게 계속 사측에게 시달리면서 그들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점점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싸우면서도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도 같이 일했거나 알고 지내던 동료를 마주치면, 인사하면서 '괜찮냐?', '밥은 먹었냐?'며 안부를 묻기도 하고, '위험하니까 너무 앞에 나서지는 말라'고 걱정해주기도 했어요. 노동자에겐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입니다. 사측이 안 나오면 결근이라는 둥 징계를 때린다는 둥, 이렇게 협박하는데 어쩔 수 없었겠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 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주먹밥이 배달되어 왔다. 달랑 주먹밥 한 덩어리지만 그 누구도 불평 한 마디 없다.  


“처음엔 우리는 떳떳하게 걸어가는데, 사측에 동원된 직원들은 대부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어요. 사실 사측은 파업을 하고 있는 우리 때문에 회사의 회생도 다른 직원들의 생계도 막막해졌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얘기인데, 왜 그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나 싶어 제가 하루는 그들과 마주쳤을 때, ‘죄를 지은 건 우린데, 왜 당신들이 고개를 못드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지난 26일 용역과 구사대가 쌍용자동차 본관까지 밀고 들어왔을 때, 실제로 구사대로 동원된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갔다. “공장안에는 해고자 명단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파업이 끝나면 어찌됐건 그들과 같이 다시 일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보냐….”, “휴~우….”
파업 미참여자들도 힘들어 하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시간에, 원하지 않은 장소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그들에겐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가혹하고 두려운 일이지도 모르겠다.

#3. 이유가 다른 싸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이번처럼 치열한 싸움은 처음이다. 건장한 체격으로 각종 무기로 무장한 용역들과 싸운다는 것이 두려울 만도 한데, 그들은 이틀을 잘 버텨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규에 가까운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와 자본, 그리고 이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두렵죠. 하지만 용역과 우리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용역들은 하루 몇 십만 원하는 일당 때문에 억지로 하는 싸움이지만, 우리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생계와 목숨이 걸려있기 때문에 하는 싸움입니다. 싸움에 임하는 결의가 완전히 다른 거죠.”

“경험이 없다보니 용역과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 동료들이 많이 다쳤어요.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판단을 잘 못하게 된 거죠.”

“우리는 원래 이렇게 큰 싸움을 해본 적이 없어요. 많이 서툴죠. 그러니까 두렵기도 하구요. 하지만 우리가 싸움을 잘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싸우는 겁니다. 그렇게 내몰린 상태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옆에서 함께 싸우는 동료 때문이에요. 두렵기는 해도 서로 격려도 해주고… 서로 힘도 많이 됐죠.”

“그리고 용역들이 자꾸 약을 올려요. 그렇게 싸움을 거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여기저기 싸우는 곳을 옮기면서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용역에게 우리 작업복을 입혀서 싸울 때 바람잡이 역할을 하게끔 하는 거죠. 아무리 같은 작업복을 입었어도 직원인지 용역인지 얼추 알 수 있거든요.”



28일 새벽, 날이 밝자 용역과 구사대가 버리고간 쇠파이프와 각종 쓰레기들이 본관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4. 회사를 살리려는 사람들?

1박2일 간의 치열한 싸움을 이겨낸 노동자들은 용역과 구사대를 몰아냈다는 기쁨보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에 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노동자들이 본 것은 그들의 말과는 너무도 달랐다.

“용역과 사측 직원들이 빠져나간 정문과 본관 앞은 완전히 쓰레기장입니다. 버리고 간 쇠파이프에 각종 쓰레기 등,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가관도 아닙니다.”

“우린 공장에서 파업을 이어가면서도 청소는 계속 해왔는데….”

“용역과 사측 직원들이 오늘 조립3-4팀 공장으로 들어와 물품들을 다 집어던지고 부시고, 난리를 쳤어요. 아니 그게 회사를 살리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입니까? 설비를 다 부수고, 있던 자리는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놓고.”

“40일 가까이 공장을 지켰지만, 그래도 규칙이 있었습니다. 사실 현장에도 과별로 사무실이 다 있습니다. 에어컨이 있으니 시원하고, 컴퓨터가 있으니 이것저것 할 것도 많은데도 불하고 출입을 금했습니다. 혹시나 있을 사무실 훼손이나 사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정리해서 공장바닥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설비가 조금이라도 망가질까봐 서로서로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고작 이틀을 있으면서 공장을 완전히 망가뜨려 놨습니다.”

#5. 정부와 산업은행으로 가자

변화 된 건 아무것도 없다. 용역과 구사대가 스스로 물러났을 뿐, 정리해고는 철회되지 않았고 당연히 파업도 계속된다. 경찰의 진압 가능성도 여전하다. 40일을 넘기게 되는 파업, 노동자들은 그 해결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부에서 공적자금 투입을 비롯한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놔야죠. 지금은 '니들끼리 싸워봐'라며 팔짱끼고 앉아있는 꼴이잖아요. 그리고 산업은행은 노동자 잘라내는 숫자놀음만 하고 있죠. 그거 보면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나요.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아이가.'"

“희망퇴직 연장해서 받는다고 직장한테 문자가 왔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전화로 그랬어요. ‘당신이나 먼저 희망퇴직서에 서명하라’구요.”

“저도 그 문자 받았어요. 11시에 희망퇴직 연장해서 받는다고 기자회견 해놓고, 오후 3시에 공장으로 치고 들어온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들은 노동자들을 잘라야 회생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고 떠벌리지만, 사실 해결방법이라고 한다면, 산 자와 죽은 자가 사측 이간질에 놀아나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정부와 산업은행으로 가서 쌍용자동차 정상화를 요구하는 것이죠. 공장에서 우리끼리 이러고 있을 문제가 아닌 거죠.”

하지만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경찰병력 투입 가능성과 사측의 시간끌기가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잘 싸워왔는데요…뭐. 더 못 버티겠어요. 사실 우리 의장과는 서로 떨어져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동안 동료들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누거나 친분을 돈독히 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파업을 함께 하면서 서로 친해지고 서로 못 했던 이야기들도 나누면서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우리는 술도 담궈 놨어요. 공장 주변에 있는 산딸기를 따다가 이번 파업투쟁에서 승리하면 함께 먹기로 했죠. 그 술 이름이 바로 ‘승리주’입니다.”

“반드시 이겨서 함께 마실 겁니다. 이기기 전까지는 절대 안 마실 겁니다.”

#6. 사랑하는 사람들



용역과 구사대가 물러가자 1박2일간 공장 안밖에서 함께 싸워온 노동자 가족이 다시 만났다. 그들에겐 정말 애달픈 1박2일이었을 것이다.  


“뉴스에 많이 나오니까 다들 상황을 알잖아요. 그러니까 크게 반대를 하지는 않아요. 다만, ‘몸조심 하고, 앞에 너무 나서지 말라’고 걱정하죠. 요즘은 뜬금없이 친구들한테도 문자가 와요. ‘힘내라’구요.”

“저 같은 경우는 제가 남아서 싸우겠다고 말하니까, 와이프가 두 말 않고 인정해 주더라구요.”

“함께 살면서 힘들지만 우리가 열심히 일해 온 것을 다 봐왔으니까, 반대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남편이 정당하다는 걸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믿어주는 거죠.”

“다 똑같아요. 말리지는 못하지만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하죠. 특히 요즘엔 급박한 상황이 뉴스에 계속 나오니까, 전화가 많이 오죠. 조심하라고….”

“여기 결혼 안 한 총각이 둘이 있는데, 요즘 애인을 못 만나니까 그 히스테리 때문에 죽겠어요.(웃음)”

“만나지를 못하니 큰 일 났어요. 형님도 아까 보셨잖아요. 저 통화할 때 한 숨 푹푹 쉬는 거.”

“면회가 가능했을 때는 애인이나 가족이 손 수 음식을 만들어서 왔었어요. 다 같이 나눠먹으라고…. 근데 다들 들어올 때에는 웃으면서 들어와도 면회 뒤에 돌아갈 때에는 모두 울면서 가더라구요.”

그들은 그렇게 누군가에겐 남편이자 아빠이고, 누군가에겐 소중한 자녀인 노동자였다. 그들이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신의 싸움은 정당해요. 부디 다치지 않게 조심해요.’

파업 몇 백일, 해고투쟁 몇 년이 특별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 만큼 흔한 일이 되어버린 요즘이지만, 말이 좋아 몇 백일이고 몇 년이지 옥쇄파업을 이렇게 이어간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날이 밝아 올 때까지 뜬 눈으로 공장을 지키면서 옆 동료와의 대화도 긴장감 속에 묻히고 자신만의 시간에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저는 기도해요. 주변 동료들 많이 안 다치고, 안전하게 복귀하게 해달라고…. 자기 전에는 그래요. ‘우리의 싸움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 세상 모두가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빨리 이겨서 ‘다음 주 토요일에는 여기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구요.”

“저는 승리해서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나도!”
“나는 와이프가 해주는 밥 좀 편하게 먹어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혼자만의 속마음을 털어 놓으면서 한 바탕 웃었다. 지붕도 없는 길바닥에 깔판 한 장 깔고 밤을 새우면서 부족한 담배를 나눠 피우고 있었지만, 그들이 행복해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앞으로 어떤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은 이미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1박2일 간의 고된 싸움은 도란도란 오가는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그렇게 정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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