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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엄숙함을 넘어 '치유와 웃음'으로 [주간경향 935호] Wednesday, 11.07.20 ( 1650hit )

엄숙함을 넘어 ‘치유와 웃음’으로


2011 07/26ㅣ주간경향 935호






ㆍ시위현장 다양한 시민세력 등장 저항방식 변화

구호, 삭발투쟁, 거리행진.
군사정권과 권위주의 시기를 거쳐오면서 정형화된 저항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고 다양한 시민세력이 등장하면서 저항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치유’와 ‘웃음’은 저항의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새로운 단어들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방송인 김제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지금은 치유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반값 등록금 집회에 대해 묻자 방송인 김제동씨는 이와 같이 답했다. 김씨에게 치유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에게 반값 등록금 집회는 높은 등록금에 신음하던 대학생들의 비명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이었던 셈이다.

연 1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은 몇몇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학자금대출 서류와 즉석복권 몇 장을 유품으로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학생이 있었다. 자녀들 등록금을 걱정하다 6층 옥상에서 몸을 던진 가장도 있었다. 높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숨진 학생도 있었다.

심리치유 통해 연대의식·자신감 회복
“아프냐, 나도 아프다.”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석한 김씨가 첫 마디를 이렇게 연 건 이 때문이었다. 높은 등록금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등록금을 낮춰야 나도 살고, 내 가족이 살고, 그래야 내 나라가 산다”며 “함께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등록금 인하 방식과 정도에는 차이를 보이지만 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은 좌·우, 보수·진보를 넘어 대개가 공감하는 문제”라며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제는 치유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치유해야 투쟁도 잘 할 수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심리치유를 담당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심리치유를 망설이는 해고노동자들을 설득하며 이렇게 말했다.
 
2009년 5월,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사측의 구조조정 단행에 반발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노사 합의로 사태가 일단락되는 데만 77일이 걸렸다. 노동자 절반인 2500명은 해고, 무급휴직, 희망퇴직 등의 형태로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점거농성 과정에서 있었던 물리적인 충돌도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죽음으로 나타났다. 회사를 떠난 사람 중 15명이 사망했다. 그 중 7명은 자살이었다. 해고노동자의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정 박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극단의 폭력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극단의 폭력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을 완전히 무가치한 존재로 각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자살충동으로까지 이어져 치유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심리치유는 총 8주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이창근 민주노총 쌍용자동차지부 기획실장은 심리치유가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 기간이 길어지면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며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지역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그러나 심리치유 과정을 통해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갈라져 있던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심각한 구호보다 웃음의 자리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희망열차 85호’를 타고 부산을 찾은 쌍용자동차와 유성기업 노동자 가족들이 6월 26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관계 회복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연대의식으로 확대됐다. 이 실장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심리치유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며 “이러한 연대와 지원을 우리만 받지 말고 더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희망열차’나 ‘소금꽃 천리길’ 도보행진을 기획할 수 있었던 것도 치유의 힘이었던 셈이다. ‘희망열차’와 ‘소금꽃 천리길’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와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지 방문하는 기획이었다. 그는 “치유를 통해 투쟁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투쟁을 하더라도 즐겁게 웃으면서.”
저항의 또 다른 방식은 ‘웃음’이다. 반값 등록금 집회 현장은 심각한 구호보다 ‘웃음’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김제동씨는 집회 현장에서 이같이 말하며 대학생들에게 “투쟁을 연애하듯이, 투쟁을 사랑하듯이 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웃어라, 그래야 행복하게 길게 오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대학생들의 집회 현장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웃음이 이어지는 자리였다.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는 학부모들의 ‘사과’ 나눠주기, 연예인들의 지지발언, 직접민주주의 토론 방식인 1000인 원탁회의 등의 자리가 마련됐다.

저항의 한 코드로 ‘웃음’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촛불집회부터 재기발랄한 구호와 퍼포먼스들이 집회 현장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웃으면서 저항했고, 웃음으로 자신의 권리를 확인했다.

이러한 ‘웃음의 저항’은 두리반으로 이어졌다. 칼국수 가게였던 두리반은 강제철거로 인해 거리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두리반은 강제철거에 맞서 1년 넘게 점거농성을 벌였다. 세입자들과 시민사회단체, 인디밴드들이 모여 이곳에서 매일 음악회와 영화상영회, 문학포럼 등을 열었다. 저항의 일상화, 축제화였던 셈이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저항하는 방식에 엄숙주의가 있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방법으로는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경직되지 않은, 민주화에 걸맞은 저항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엄숙주의에만 기반한 저항은 인간적인 한계를 초월한 의지, 단호함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인간의 일상과 맞지 않았다”며 “최근에 서울대 학생들의 법인화 반대 점거농성에서 보듯 저항의 방식 또한 일상성과 잘 연계된다면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감이 많이 줄어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를 불편하지 않게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시민들은 왜 희망버스에 탔나 [주간경향 935호] 노동조합
↓   정혜신의 인권 그리고 치유 이야기 [오마이뉴스 7.11]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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