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건강 컨설팅 기업 마임드프리즘의 대표인 정혜신 박사는 지난 3월26일부터 5월21일까지 매주 무료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집단 심리치료를 진행했다. 단순 심리치료를 넘어 방송인 김제동씨와 함께 토크콘서트를 열기도 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어떤 사상이나 신념 때문에 쌍용자동차 분들을 돕는 건 아니예요. 응급환자를 돕는 마음으로 매주 평택으로 가고 있어요.” 정 대표가 밝힌 쌍용차 노동자들을 돕는 이유다.
정혜신 박사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1~2회 생색내기식 심리치료가 아닌 8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정식 집단 심리치료를 벌었다.
정 박사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경우 '전쟁 같은 상황'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경험한 경우"라며 "언제든지 나는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의 존엄성이 많이 박탈된 지점이 많아 보인다"고 치료했던 노동자들의 상태를 전했다.
그는 이어 "모든 노동자들이 자살 충동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언제라도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위기에 직면환 상황"이라며 "의학적으로 봤을 때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STD)를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가 25일 논현동 사무실 앞 정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정 박사는 8주간의 치료과정을 통해 많은 성과가 있었다며 “특히 환자들이 일상성을 회복한 것이 정말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큰 트라우마를 겪은 뒤, 외출조차 힘들어 하던 조합원들이 이제는 가족들과 웃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무엇보다 삶에 희망을 갖게 돼서 너무나 기쁘다는 것이다.
그는 또 8주간의 치료 과정 중간중간 방송인 김제동, 가수 박혜경, 명진스님, 박혜경씨 트위터 팬모임 레몬트리공작단 등이 쌍용차 노동자들을 찾아온 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고 쌍용자동차 문제를 관심가지는 것이 치료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며 “6월 4일에는 KBS 미녀 아나운서들이 온다. 이런 흐름이 끊이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웃어보였다.
정 박사는 쌍용차 가족들에게 60% 이상 꼴로 발견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해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기억이 몸에 남을 때 발생되는 병”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속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유센터’가 설립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정혜신 박사와의 일문일답.
-어떤 계기로 쌍용자동차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심리치료를 하게 됐나.
쌍용차 문제는 원래 뉴스로 접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은 쌍용차 문제를 애써 외면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임우창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과 임우창 조합원 아이들이 고아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특히 그 아이들을 생각해 보니 도저히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먼저 연락하고 평택으로 향했다.
어떤 사상이나 신념 때문이라기보다는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달려갔다.
-치료를 해보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상태는 어떤가.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은 모두가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가지고 있다. 삶의 임계점에 도달했을 만큼 위험한 상태다. 몇몇 노동자들은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몇 개의 끈은 이미 놓은 상황이다.
전쟁을 이미 경험한 사람같이 ‘언제든지 나는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의 존엄성이 많이 박탈된 지점이 많이 보인다. 의학적으로 봤을 때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다.
모든 노동자들이 자살 충동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언제라도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조합원들과 가족들은 또 사람관계에서 상당한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른바 '산 자'(정리해고 미대상자)들에 대한 배신감 등으로 외출 자체를 꺼리는 조합원도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경우에, 그 사건이 끝난 경우에도 충격적인 기억이 남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질병이다.
일반적인 스트레스나 아픈 기억들은 보통 사람을 성장시킨다. 연인과 헤어졌다던지, 이혼 같은 경우는 그 순간은 매우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사람에게 교훈을 남긴다.
하지만 전쟁이라던지 성폭행 같은 끔찍한 기억은 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이다. 자아가 아무리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경험을 했을 경우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리게 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구체적은 증상은 어떤 것이 있나.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내 옆에서 내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숱하게 보면서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 각인 되는 것이다. 삶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자살이 발생한다.
또 개인의 최소한의 존엄이 깡그리 무너지는 고문을 당한 사람의 경우, 신체적인 고통 뿐 아니라 심리적인 자존감과 존엄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고문 피해자들은 나중에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 반쯤 기가 빠진 사람으로 살게 된다.
방사능에 피폭되듯이 폭력에 피폭됐기 때문에 밥을 먹는 것, 잠을 자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느끼고 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경우 ‘전쟁 같은 상황’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경험한 경우다. 파업과정에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각인됐고, 사회적으로도 ‘과격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히며 오갈 곳 없어진 것이다. 고립감은 스트레스를 더욱 크게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아이들 중에서도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데.
한 노동자가 교통 관련 일로 경찰서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아이가 ‘가지마라’고 울면서 말린 적이 있다. 파업 과정을 지켜본 아이에게는 경찰이 ‘무서운 사람’으로 각인 된 것이다.
눈에 얼른 보이지 않는 이런 2차 피해는 무수하게 많다. 집계도 다 되지 않는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잠깐만 부주의하면 이 문제는 언제든지 따라올 수 있다.
예컨대 범죄자라고 해도 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수갑을 채우거나 하지 않도록 유념해야한다. 만약 그 장면을 직접 자녀가 보게 된다면 평생 마음에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공권력은 그래서 늘 폭력을 사용할 때 세심하게 주의해야 한다. 공권력은 폭력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문 집단이지 않나. 전문가라면 폭력을 사용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 원칙과 상식적인 선을 결코 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쌍용자동차의 경우 그런 상식적인 선을 한참 벗어나는 무자비한 폭력이 있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에도 공권력이 투입됐다.
유성기업의 현재 상황을 보면 쌍용차 진압이 떠오르면서 공포를 느낀다. 노동자들은 '적'이 아니라 밤샘근무를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생활인이다.
특히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들 중에 유성기업 파업이 남일 같지 않다며 달려간 분들이 계신다. 이분들은 한 번 폭력을 경험한 분이기 때문에 특히 더 걱정된다.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정도의 공권력 투입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8주 심리치료 동안 증상이 호전된 사례도 있나.
프로그램에 참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부분 많이 호전됐다. 가족들이 대부분이 ‘일상성’을 회복했다는 점이 치료의 가장 중요한 성과다.
일상성이 회복했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일상적인 인간관계가 가능해졌다’는 것이있다. 구체적으로는 아내와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뭘 먹을지 이야기 하고, 무슨 TV프로그램을 볼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다.
이전에는 많은 쌍용차 분들이 일상적인 관계를 어려워했다. 거리에서 이른바 ‘산 자’들을 보면 배신감에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던 노동자도 있었다. 이밖에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 등에서 마주치거나 마트에서 마주치면 엄청난 분노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어찌할 바 모르는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도 있었다. 그 노동자는 감정조절이 너무 어려워서 아예 외출을 포기하고 집에서만 생활하기도 했다.
그런데 8주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면서 다들 ‘일상이 편해졌다’고들 말한다. 이제는 산자들을 길에서 만나도 전부는 아니지만 많이 편안해졌다. 일상의 동선이 자유로워지면서 많이 웃고 있다.
물론 100% 다 좋아져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단지 쌍용자동차 가족들이 앞으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성을 회복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쌍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심리치료한 소감은.
쌍용차 가족분들이 치유 작업이 원활하게 되면서 정말 날아갈 듯 기쁘다. 그 분들이 심리적으로 안전함을 느끼고, 일상성을 회복한다 점이 기쁘다.
또 자신들의 어려운 심리에서 벗어나 마음이 튼튼해진 사람들이, 또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주체로 나서는 모습도 보기 좋다.
무엇보다 이들이 마음속에 희망을 갖고 생활하게 된 점이 의사로서 가장 기쁘다. 이런 행복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은 그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사람 아닌가. 내 작은 노력으로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앞으로 정신과 의사로써 내가 사회에 무엇을 기여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느꼈다.
-심리치료 이후 추가적인 계획이 있나.
지난 21일 심리치료가 일차로 끝났다. 아직 심리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2차 심리치료 과정을 28일 개최한다.
1차 치료를 받은 사람들도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어서 2차 치료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만, 워낙 정신적인 임계지점 이하에 놓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많아 손쓸 여력이 없다.
현재로서는 쌍용자동차 가족 분들을 돕는 기운이 사회적으로 퍼지는 것이 중요하다. 레몬트리 공작단, 가수 박혜경 씨, 명진 스님, 김제동 씨가 노동자들을 자주 찾고 있다.
6월 4일에는 KBS 골든벨을 진행하는 미녀 아나운서들이 쌍용차 노동자들을 찾는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 생각이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센터’ 설립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
우리나라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가 많은 나라이다.
역사적으로 제주 4.3 사건이라던지,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경우 폭력의 주체가 국가였다. 제주나 광주 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 또 우리나라에는 1970~90년대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관계자들이 수없이 많이 고문당했으나, 제대로 된 치료는 거의 전무했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폭력은 오늘도 진행중이다. 파업현장에 투입되는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한 폭력이 그것이다. 폭력은 일상화 되어있는데, 폭력에 의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전무하다. 현재는 개인이 알아서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형편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공권력을 엄하게 집행하는 기관도 있어야 하겠지만, 공권력의 부당한 집행 등에 심적으로 부상당한 사람을 위한 기관도 있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 전체를 돌봐야하는 거대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센터는 현재 미국, 유럽, 동남아 등 세계 곳곳에 있다. 우리나라도 센터 설립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일단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센터가 설립된다면, 그 존재 자체로 치료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는구나’라는 생각 자체만으로 깊은 상처나 마음속에 쌓인 한(恨)이 일부 치료될 것이다.
143
, 
2/8 pa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