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하이닉스매그나칩 합의서를 인정해선 안됩니다
지난 4월26일, 우리는 참으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소식을 접해야 했다.
무려 2년6개월여 처절한 투쟁을 전개해온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문제가 ‘위로금 몇 푼’으로 일단락될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이러한 해결방식이 옳다고 믿는 동지들은 단한명도 없겠지만, 우리는 우선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동지들의 처절한 사투에 힘있게 연대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었음을 먼저 고백한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는 무엇보다 이러한 상황으로 내몰리도록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조합원들을 방치한 점에 대해 조합원 동지들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동지들이 투쟁으로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위로금 합의서’가 폐기되어야 한다.
14만 산별이자 단일노조로 출범한 금속노조의 체계와 절차상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위로금 합의서’가 갖고 있는 향후 파장과 영향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를 직시한다면 더욱 그렇다. 노사관계 로드맵 악법으로 부당해고 금전보상이라는 엄청난 독소조항이 시행되는 마당이지 않은가. 악법을 넘어 투쟁과 단체협약으로 이 제도를 무력화해야 할 과제가 민주노조운동의 어깨 위에 있지 않는가.
이미 코오롱 정리해고 사태를 비롯해 수많은 장기투쟁사업장에서 자본가들은 ‘위로금 몇 푼’으로 상황을 종결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비춰왔다. 2년6개월을 싸워온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문제를 이렇게 해결한다면 다른 장기투쟁사업장의 자본가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장기투쟁과 엄청난 피해, 상당한 피로감에 노출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동지들에게 이러한 합의서를 들이밀고 찬반을 묻는 것 또한 옳지 못한 것이라 판단된다. 합의서를 본 조합원들 사이에 체념과 포기의 정서가 확산될 것이 확실했고, 투표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와 무관하게 조직이 분열되고 투쟁의지가 약화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40%에 달하는 조합원들이 합의서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설사 조합원들 100%가 “돈으로 해결해달라”고 동의하더라도 “그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설득에 나서는 것이 지도부의 자세여야 하지 않겠는가!
4월25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한미FTA폐기를 위한 6월 총파업을 결의했다는 얘기는, 7월1일 시행될 비정규악법 폐기와 특수고용 노동3권 쟁취를 위한 6월 총력투쟁을 앞둔 우리 비정규직노조들에게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역시 금속 동지들이야!”
하지만 총파업을 결의하는 대의원대회가 열리고 있던 그 시각에 청주에서는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고, 다음날에는 위로금 몇 푼으로 사태를 정리한다는 합의서에 작성되고 있었다. ‘잠정합의’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이미 교섭 당사자간 서명·날인이 되어 있어 ‘직권조인’을 부정할 수 없음도 확인되었다.
금속산별의 역사적 출범과 힘찬 발걸음을 기대한 많은 이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이 합의서가 최종 승인된다면, 14만 금속산별 출범 직후 첫 번째 장기투쟁사업장 해결이 ‘위로금 합의서’인가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전비연은 수차례 산별노조의 힘은 그 ‘형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단결과 연대를 확장하려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임을 역설해왔다.
지금 기아자동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는데, 정규직 기아자동차지부가 ‘직가입’ 방침을 천명하며 비정규직지회를 탈퇴하거나 과거 비정규투쟁을 파괴한 전력이 있는 노동자들을 가입시키고 있는 점을 보면 더욱 그러한 확신이 강해진다. “정규직-비정규직의 하나됨”은 조직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적 연대라는 ‘정신’을 세우고 공동투쟁 속에서 조직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금속비정규노조대표자회의(의장 홍영교) 역시 이번 사태를 ‘직권조인’으로 규정하고 5월10일로 예정된 금속노조 중집회의에 합의안 폐기 및 재투쟁 결의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으며, 조성웅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과 권순만 GM대우창원비정규지회장이 금속노조에서 항의농성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의 올바른 해결은 곧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길임을 직시하자! 산별노조의 정신을 계급의식으로 무장하는 길임을 직시하자!
싸움의 과정에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훌륭한 지도자도 잘못과 오류를 범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과 오류를 인정하고 겸허히 대중들에게 반성하며 다시한번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자세이다. 하이닉스매그나칩 합의서는 명백한 잘못과 오류이며, 따라서 합의서는 폐기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5월10일 열리게 될 금속노조 중집회의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 ‘위로금 합의서’ 승인이 아니라 합의서 폐기와 재투쟁 결의가 이루어지기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바이다. 아울러 우리 또한 그간 힘있게 연대하지 못한 과거를 반성하고 동지들의 투쟁에 함께 할 것임을 약속한다.
2007년 5월 9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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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하이닉스매그나칩 합의서는 폐기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