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구한 운명의 쌍용차
따져보면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만큼 기구한 회사도 없을 것 같다. 쌍용차의 전신은 동아자동차인데 쌍용은 80년대 후반 이를 인수했다. 당시 삼성과 쌍용이 인수를 놓고 경합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어쨌든 쌍용이 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쌍용그룹 해체의 한 단초를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라는 것이 한두 푼 투자해 되는 것도 아니고, 막상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놓고 보니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기술은 기술대로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하고, 라인 개선과 신차개발 등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되다 보니 그룹 자체가 흔들거렸다. 결국 쌍용은 1998년 대우에 자동차를 매각했고, 대우 역시 자금난에 휘청거렸던 터라 2000년에 그룹에서 분리시켰다. 이후 2004년 중국의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되었다가 최근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이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뉴스에 따르면 쌍용차는 지난 2분기 적자가 84억으로 적자 행진을 계속했지만 적자폭은 줄어들고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9% 증가한 5296억으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언뜻 보면 좋은 실적이지만, 기아자동차도 SUV의 판매량이 늘어 매출액이 10조를 돌파한 것을 보면 전반적인 자동차 시장 회복세에 편승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SUV가 주종목인 쌍용차에게 기아차나 현대차의 SUV 판매량 증가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근 기아차나 현대차의 SUV 디자인은 쌍용차보다 훨씬 세련되고 경쟁력이 있다. 쌍용차는 C200이라는 신차를 통해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마힌드라의 쌍용차 인수 의도는 뭘까
자동차는 수만 개의 부품과 전기와 전자 등 모든 기술력이 종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투자되는 돈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상하이 자동차의 경우 약속한 투자를 하지 않았고 기술만 빼내갔다는 이른바 ‘먹튀’ 의혹을 받았다.
삼성도 자동차에 투자했다가 손 들고 나올 정도로 자동차는 쉬운 사업이 아니다. 정말 오랜 기간의 기술과 좋은 협력업체의 확보, 그리고 신차 개발 하나에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정도를 감당할 자금력, 연구개발 인원 등…
말하자면 쌍용차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모든 부분들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의도한 대로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이 적자행진을 계속하는 쌍용차를 인수하고 그런 천문학적인 돈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피아트나 르노-닛산이 이번 인수협상 과정에서 쌍용차를 외면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기술과 디자인에서 훨씬 앞서 가는 자동차 회사들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하는 쌍용차를 굳이 인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볼보나 허머 등 유수의 자동차 회사를 계속 인수하는 중국 역시 이미 빼먹을 대로 기술을 다 빼먹은 쌍용차에 매력을 느낄 리 없다. 그러니 인도 등 신흥 자동차 강국으로 발판을 마련하고 싶은, 아직 기술력이 일천한 곳에서나 쌍용차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마힌드라 그룹의 쌍용차 인수 의도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쌍용차는 기술과 고용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요는 누가 인수하든, 쌍용차를 인수해 글로벌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로 키울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기술이나 빼내고 또 튈 것인지가 관건이다. 인수대금 수천 억 정도야 연구개발비로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쌍용차를 인수해 알맹이는 빼먹고 쭉정이만 남긴다면 쌍용차는 몇 년 후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
MOU 체결과정에서 이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며, 기술 유출 방지와 투자를 감시할 장치도 필요하다고 본다. 자동차 회사는 사실 국내 기업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현대나 기아가 국내에서만 공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국내생산보다 해외공장 생산이 더 많은 지금, 누가 소유를 했느냐 하는 것보다는 기술 근간을 어느 나라에 두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쌍용차가 인도의 그룹에 넘어가는 이상 사실 국내기업은 아니다. 르노 삼성이 삼성이라는 간판을 굳이 달고 있는 데는 국내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미가 있고, 대우 역시 GM의 회사이면서도 대우자동차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쌍용차 역시 국내 소유가 아니지만 쌍용차라는 대우나 삼성과 마찬가지로 국내 기업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력과 함께 중요한 것은, 공장과 고용의 유지다. 다국적 기업인 자동차 회사들이 필요한 대로 공장을 만들고 한쪽에선 폐쇄하는 일은 이미 보아온 터다. 우리는 아직도 <국적>이라는 것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많은 대기업들이 다국적기업에 속한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에게 고용을 늘이라고 하지만, 글로벌한 대기업은 세계화라는 테두리에서 어느 나라에 고용을 늘이고 어느 나라에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술의 유출방지와 함께 중요한 것은 고용의 유지와 확대를 하라는 압력이다.
쌍용차 <산 자>들의 앞날은
그런데 가슴 아픈 것 중 하나는, 쌍용차는 지난해 노조의 투쟁과정에서 중요한 걸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를 밀어냄으로써, 자신들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다국적 기업으로 변모하며 공장의 폐쇄와 라인의 이전 등을 통해 자유롭게 고용과 해고를 마음대로 주무를 때 노동자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뭉쳐서 이를 막아내는 것인데, 쌍용차 노조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 아주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았으므로 인도의 마힌드라가 될지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새로 인수하는 경영진은 경영이 어렵거나 하면 아주 쉽게 감원을 요구할지도 모르고, 잘 나가게 되면 라인 이전이나 신규 라인을 자국에 배치하는 것을 의도할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노동자가 노동자를 밀어낸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물론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지만, 호황에는 사내하청이나 파견 등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불황에는 이들을 먼저 밀어냄으로써 정규직의 방패막이로 삼는 일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해 <저 달이 차기까지> 77일의 투쟁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이다. (전체는 아니다) 진보에 속하는 사람들은 쌍용차의 전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쌍용차를 사지 않겠다고 했으며, 보수에 속하는 사람들은 쌍용차 노조가 파업을 했다고 사지 않겠다고 하는 걸 보았다. 이래저래 양쪽에서 두들겨 맞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런 관점이 정작 소비에까지 연결되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자신의 주장과 신념에 따라 단순한 소비재도 아니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몇 년 이상을 타야 하는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작 중요한 것은 쌍용차 자신의 경쟁력과 생존력이다. 그리고 그 경쟁력과 생존력을 구성하는데 있어 한 축인 노동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과거처럼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과정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가 막판에 제 살을 도려 살아남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일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이 거의 전부인 자동차 시장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쌍용자동차의 앞날은 아직도 불투명하고 이른바 <산 자>에 속한 사람들이 안심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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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쌍용차의 '산 자'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