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쌍용車가 사는 길
[2009.01.13 19:32]
1997년 김영삼 정부 임기말에 발생한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는 결국 외환위기를 초래해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연초부터 한보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7월에는 부실이 누적된 기아자동차그룹 18개 계열사에 대해 금융기관이 부도유예협약을 적용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2개월간 채무상환 부담을 유예하되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자동차 업계는 방만한 경영과 악화된 자금 사정 등으로 미뤄 기아차가 사실상 청산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국민기업 기아차’를 살리자는 운동이 벌어지면서 업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본보를 포함해 언론들이 기아차 살리기에 앞장서면서 공기업도 아닌 사기업에 ‘국민기업’ 이미지를 조작해 덧칠한 전략이 의외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야 후보들도 기아차를 방문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기아차의 구조적 부실을 알면서도 정부와 금융계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마냥 끌려가는 사이 외환위기가 엄습했다. 기아차를 비롯한 부실기업 정리와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찾아온 외환위기 한파는 국민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겼다.
기아차 살리기 운동이 한창일 때 편집위원으로 있던 필자는 사내 문건을 통해 그 효과와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용기와 역량이 부족해 본보가 기아차 살리기에서 물러서도록 주장을 관철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고 부끄럽다.
“분명한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정부와 국민을 납득시켜야 지원이 가능하다”
기아차 못지않게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4년 중국 상하이차로 넘어간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해 그제 법원으로부터 재산보전처분을 받았다. 채권·채무가 동결되자 일부 납품업체들이 확실한 대금 결제를 요구하며 납품을 거부해 쌍용차 공장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법원은 쌍용차 재산을 일단 동결하고 1개월 내에 청산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쌍용차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인수 이후 투자를 기피한 최대주주 상하이차의 책임이 크다. 계약 당시 상하이차는 1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투자가 부진하자 쌍용차의 신차 개발도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쌍용차 노조는 상하이차가 투자 약속을 파기했을 뿐 아니라 쌍용차 기술을 빼가고 이전료를 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평택과 창원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쌍용차 살리기’ 운동을 벌여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민주노총, 시민단체 등과 함께 상하이차를 겨냥한 손해배상 청구 범국민 서명운동을 펼치겠다고 한다.
위기에 빠진 기업을 살리기 위해 지역주민이나 노조가 나서 힘을 보태겠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우수한 협력업체들이 일시적인 자금난에 몰려 흑자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도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과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특정 업체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행위는 피하는 게 옳다.
쌍용차가 벼랑에 몰린 이유는 외형상 나타난 자금난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투자 부진과 노사 갈등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지난해부터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데다 최근 경제한파가 겹쳐 시장 기반을 잃었다. 지금 상태로는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해도 회생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쌍용차가 회생하려면 노사 합의를 통한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부실 요인을 털어내고 현실적이고 분명한 발전전략을 수립해 국민과 정부를 납득시켜야 한다. 금융위기가 실물로 번져 멀쩡한 기업까지 흔들리는 판국에 정부가 부실 기업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구조조정과 확실한 비전 제시가 어렵다면 스스로 청산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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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