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총선까지의 정치 지형
권영길/문국현/금민
가치논쟁으로 보면 17대 대선의 심층 대결 구조는 보수적 경제성장론과 진보적 경제성장론의 싸움이다. 물론 경제성장론과는 결이 다른 민주노동당의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있지만 대세는 아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앞으로 대세가 될 가능성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경제성장론이 없는 이회창 후보는 BBK 검찰발표 이후 설 땅이 확 줄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수구보수의 세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2007년 12월 19일까지는 진보적 경제성장론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설 땅이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창조한국당, 한국사회당 등 진보적 경제성장론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비전으로 내세운 정치세력의 능력에 따라, 또 대선 이후 생성되기 마련인 유권자들의 1위 견제심리의 크기에 따라 진보적 경제성장론이 설 땅은 넓어질 수 있다. 물론 이 때 창조한국당과 한국사회당이 내세울 가장 큰 무기 또한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으로서의 진보적 경제성장이다. 기대할 바는 2008년 총선이다.
그런데 진보적 경제성장론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문국현 후보와 금민 후보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들의 태생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유한킴벌리라는 비교적 양심적인 기업의 CEO 출신인 문국현 후보는 착한 기업인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꿈꾼다. 좌파 정당 한국사회당의 대표이자 독일에서 법학과 헤겔-마르크스를 공부한 금민 후보는 그리스-로마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공화주의 역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국민 자본주의의 한계 속에서 구현하려 하고 있다.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에서 출발점이 다른 두 개의 진보적 경제성장론이 마주쳤다. 같기도, 다르기도 하지만 문국현 후보와 금민 후보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같은 땅을 밟고 서서 열위를 가려야 할 운명이다. 유권자들이 보수적 경제성장론과 정상에서 자웅을 겨룰 단 하나의 진보적 경제성장 모델을 선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에 뛰어든 두 개의 진보적 경제성장론은 스스로 유력한 대안이 되기 위한 진검 승부를 대선을 거쳐 총선 때까지 치러야만 한다. 물론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대선에서의 득표로만 따진다면 승부는 거의 결정됐다. 그러나 총선까지 시간을 연장한다면 진보적 경제성장론의 얼굴이 누가 될지 확신할 수 없다.
범여권으로 분류될 뿐만 아니라, 인맥으로도, 지지기반으로도 현재의
대통합민주신당과 상당 부분 겹쳐있는 창조한국당은 총선을 앞두고도 단일화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독자적으로 안정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까지의 길에는 험난함이 예고돼있다.
한국사회당의 어려움은 언제나 인지도에 있다. 언론이 외면하는 원외
정당이라서 스피커의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사회당은 2008년 총선에서 원내진출을 위해 당의 명운을 건 총력전을 또 다시 펼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난 10년간 노쇠했고, 새로운 국가운영비전을 제출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하향세가 가속화된다면 이는 한국사회당이 한국 진보의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낡은 진보든 새로운 진보든 진보에 대한 외면현상이 일어난다면, 좋은 조건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창조한국당과 한국사회당이 지금과 같은 주장과 형태로 오랫동안 공존하거나, 혹은 두 당이 동시에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한, 창조한국당과 한국사회당은 단일한 시장에서 장도가 유망한 새로운 정치적 유권자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고, 선택받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만 한다. 결과가 어찌될지, 어떤 결론이 더 바람직한지는 2008년 상반기까지 두 당의 경로를 지켜보면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어찌됐건 바람직한 일이다. 문국현 후보와 금민 후보의 등장으로 선진화 담론으로 무장한 보수적 성장론자들과 겨룰 수 있는 사람 존중 가치로 무장한 진보적 성장론이 설 땅이 채워졌다. 민주 대 반민주, 성장 대 분배의 대립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지금 바람직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전개되는 권력투쟁의 중심축은 새로운 세력, 진정한 좌파와 이제 막 수구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새로운 보수 우파 간의 세력 대결 구도로 이동할 것이다.
수구 보수 대 친북민족주의의 대립구도인 1953년 체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인 1987년 체제를 떠나기 위해 이제 막 이륙한 대한민국호는 신자유주의 동맹과 민주노동당식 저항정치의 대립구도인 신자유주의 과두제의 1997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종착점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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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보적 경제성장론의 얼굴이 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