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첫 차별시정 신청자 해고
축산물공판장 비정규직 노동자들 줄줄이 해고위기
비정규직 차별시정을 신청해 조정절차에 있는 노동자를 회사가 해고조치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농협 경북 고령축산물공판장은 지난달 14일 근로조건에서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며 두 달여전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한 한 비정규직 노동자 이윤호(40세·민간서비스연맹 유통서비스노조 고령축산물공판장지부)조합원의 계약기간이 만료돼 오는 10월16일자로 고용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이윤호 조합원은 지난 6년간 공판장에서 도축업무를 맡아 왔으며 고용계약은 매년 자동 갱신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고용계약을 해지할 경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대우가 인정돼 시정명령을 받아도 복직은 불가능하다. 또 농협이 시정명령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할 경우 2~3개월의 시간이 걸려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사측의 해고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농협 경북 고령축산물공판장에서 도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19명은 농협측의 용역 전환 방침에 반발, 지난 7월24일 경북지노위에 차별시정 신청을 냈다. 이들은 임금 차별을 비롯해 후생복지부문 차별, 부당전직에 대한 차별 등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온 내용을 담아 차별시정을 신청했다. 경북지노위는 10월1일부터 이 문제에 대한 심문회의에 들어갔다. 아울러 7월 말경 사측의 도급이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들어 노동청에 고소조치하는 한편 부당전직구제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서는 농협도 인정하고 있다. 사측은 차별시정 신청에 대해 1일 열린 경북지노위 심문회의에서 “실제 8월말까지는 고령공판장쪽에서 도급업체 노동자들을 직접 지도감독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9월부터는 합법도급을 하겠다. 도급을 철회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는 전무이사 명의로 된 공문을 비정규직법 시행을 코앞에 둔 6월25일자로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판장으로 내려온 공문 제목은 일명 ‘경제사업장 도급확대 추진계획’. 그 내용은 ‘7월1일 비정규직법 시행 이전까지 도급을 추진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배치전환하고 계약기간 만료시까지만 근무시킨 후 해지하라’는 것이었다.
이철수 민주노총 대구본부 사무처장이 근로자위원 자격으로 심문회의에 참가해 사측에 대해 “지난 93년 고령도축장 개장부터 지금까지 원활히 운영돼 왔고 그동안 한 번도 문제가 없었는데 왜 도급을 하려고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도급은 업무상 필요에 의해 한 것 아니다. 비정규법이 시행되니까 했다. 법에서 도급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못하게 하지 않는다.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이다”이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나섰다. 보통 ‘업무상 필요’ 운운하는 것과는 달리 ‘비정규직 차별시정과 의무고용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급을 추진한다’는 답변을 대놓고 한 셈.
이철수 사무처장은 “차별시정 신청을 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현행법에 명시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별시정 조정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를 통보한 것은 보복성 불이익조치”라고 지적하고 “이는 바로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지 못하고 차별시정 명령을 받아도 그 효과를 적용받기 전에 해고당할 수 있는 법임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지금의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적용받을 경우 고령축산물공판장에서만도 이윤호 조합원이 10월16일자로 해고된 것을 시작으로, 오는 11월23일 1명, 12월1일 3명, 내년 1월2일 1명, 3월 3명이 줄줄이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청을 비롯한 행정당국은 불법파견과 도급 관련해 엄중히 행정지도를 하지 않고 수사와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 비정규직법을 악용하는 회사의 횡포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해고사태를 맞고 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오는 8일 오후 4시 민주노총 대구본부 강당에서 비정규법 시행 100일을 맞아 비정규법에 대한 평가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할 평가발표회에서는 이 법 시행에 따른 구체적 피해사례 등이 발표된다.
이어 11일에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대구지역을 방문해 고령축산물공판장지부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장을 방문한다. 전병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다음주 중 대구에서 조합원 간담회 및 공판장 항의방문을 전개할 계획이다.
또 회사가 통보한 대로 10월16일자로 이윤호 조합원이 해고될 경우 그 다음날인 17일 오후 4시를 기해 대구지방노동청 앞에서 비정규직법전을 태우는 비정규직법 화형식을 가질 예정이다.
한편 비정규교수노조는 오는 15일 서울 광주 대구 등 전국 3곳에서 동시다발로 비정규교수 차별시정 신청을 하고 기자회견을 갖는다. 고령축산물공판장지부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최초로 차별시정을 신청한 이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농협조직이 관료조직인 점을 감안해 공판장의 행태가 농협중앙회의 관리감독하에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총연맹과 함께 농협중앙회를 압박해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홍미리기자>
▲차별시정제도란=기간제근로자, 단시간근로자, 파견근로자가 차별적 처우를 받은 경우 지방노동위원회에 그 시정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 신청은 차별적 처우가 있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 차별시정신청을 받은 지방노동위원회는 지체 없이 필요한 조사를 하고 관계당사자에 대하여 심문을 하여야 한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심문 종료 후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정한 때에는 기각결정을 하여야 하고, 차별적 처우에 해당된다고 판정한 때에는 사용자에게 시정명령을 발하여야 한다. 시정명령의 내용에는 차별적 행위의 중지, 임금 등 근로조건의 개선 및 적절한 금전보상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 또는 기각결정에 대하여 불복이 있는 관계당사자는 그 명령서 또는 기각결정서의 송달을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결정에 대하여 불복이 있는 관계당사자는 재심결정서의 송달을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재심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시정명령·기각결정 또는 재심결정은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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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첫 차별시정 신청자 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