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 진보의 느티나무
"...한번은 현대중공업에 교육을 나간 적이 있었어요. 사회자가 "전노협 쟁의국장 심상정 씨가 강의해주시겠습니다"라고 해서, 제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도 전부 제 뒤에 있는 문을 쳐다보는 거에요. 하하하. 쟁의국장하면 전투적이고 우락부락한,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 아저씨가 나와야 하는데 말캉말캉한 아가씨가 나오니 뭐가 잘못된 것 아니냐 하는 표정이더군
요. ..."(월간중앙, 2005.04 인터뷰 “전인권이 만난 사람들”중)
10년도 더 지난 옛 이야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심상정 후보의 전노협 ‘쟁의국장’(농담 삼아 ‘인민무력부장’이라고도 했다는..) 시절의 이야기이다.
아마 작년쯤에도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은 기억이 나는 심상정의원의 월간중앙 인터뷰의 한 토막. 당내 경선 동안 문득 다시 생각이 나 찾아 읽노라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리 내가 지지하는 후보라지만 ‘뭐 이런 지독한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 ^;;
심상정의원의 인터뷰를 다시 읽으며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이하, 별도 표시하지 않은 인용문은 “월간중앙” 2005년 4월, 인터뷰의 내용이다.)
<월간중앙 2005. 04. "전인권이 만난 사람들에 실린 이미지>
1. 일의 인간, 철저한 조직인
수많은 남성 조합원들을 잠시 당황시킨 ‘작달막한 아가씨’는 그러나 그때 이미 노동운동 경력 10년을 넘긴 민주노조 운동의 핵심이었다. 한국 노동운동이 수십년 침묵을 깨고 다시 일어서는 이정표가 되었던 구로동맹파업의 주역이었다. 사회변혁전망과 노동운동의 결합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던 서노련 중앙위원, 그리고 서노협, 전노협을 거치며 ‘87년 이후 수많은 투쟁을 조직하고 지도해온 전투적 노동운동의 중핵 중 한명이었다.
노동자들이 그걸 이해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열정과 헌신, 명확한 판단력을 지닌 ‘철두철미한 조직인’을 일과 투쟁 속에서 만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금속노조 시절 심상정과 함께 했던 이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 한마디로 일벌레예요. 1주일에 반을 지방출장으로 보내기도 하고요. 일반 사기업이라면 워크홀릭(workholic)이라는 말을 들었을 거예요. 심 처장님-우리는 지금도 처장님이라고 불러요-은 끝없이 일감을 만들어요. 노조 일을 재미있어 했지요...”
“...알기에는 옛날 구로공단에서 일할 때 밤잠을 안 자고 몇 달씩 일하다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었어요....”
“... 사람 관리가 철저해요. 어떤 투쟁을 하거나 사업을 할 때 사전·사후 조율을 참 잘하세요. 노조니까 관련 단체들이 많은데, 어떤 결정이든 모든 단체와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잖아요? 소외된 사람을 찾아 설득하고 달래는 일을 열심히 하세요. 어떤 때는 전화통을 붙들고 살아요. 그렇게 하니까 회의나 투쟁이 매끄럽게 진행되지요. ...”
“... 남들보다 한두 발 앞서 가요. 이번 일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겠다 싶은데, 처장님은 저만큼 더 일을 벌여 놔요. ...반 보만 앞서 가라고 주문해도 처장님은 한 보 반, 두 보 앞서 가요.”
사실 얼핏 본다면 25년을 전투적 노동운동의 중심에 있어왔던‘노동운동가 심상정’과 ‘최우수 국회의원 심상정’은 얼핏 보면 잘 매치가 안 될지 모른다.
그것을 이어주는 키워드는 바로 이런 ‘일의 인간’그리고 ‘철저한 조직인’의 자세가 아닐까. 하지만 그 연결에는 한 가지 키워드가 더 있을지 모른다. 바로 ‘현실’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필자 : ... 지금도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일에는 불편함을 느낀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심 의원 : 물론이지요. 아주 불편하지요. 국회도 마찬가지인데, 국회에서 논의하는 사항들은 대개 현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별로 시급하지도 않은 것을 놓고 싸우고, 시급한 문제들은 뒤로 밀려나거나 아예 논의조차 안 돼요. 지금 국회에는 국민이 없어요. 부자들만 있습니다. ... 1986년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이 당면 슬로건을 정할 때 “제헌의회그룹을 소집하자”거나 “자주·민주·통일로 나가야 한다”거나 “삼민으로 하자”며 조직 전체의 역량을 투입해 논쟁을 벌일 때, 그 논쟁은 노동자들의 삶과 별로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여기저기서 경험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어요. 결국 저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조합이라는 현장으로 돌아왔지요. ...”
2. 약속을 지킨 심상정
이렇게 ‘현실’이라는 것에, 그리고 ‘현장’이라는 것에 천착해온 심상정이 정치인으로서, 민주노동당 의원의 위치에서 인식한 현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현실을 맞상대하기 위해 어떤 ‘일감’를 만들고 몰두했을까.
“심 의원 : ...우리가 열정은 강한데, 아직 기층민중을 위한 민생전략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과 의원단에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재경위 소속인데요, 앞으로 남은 3년 동안 실물적 검증을 거친 민노당의 경제정책을 세우는 것이 이번 임기의 제일 큰 목표입니다. 그것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
생각해 보니 심상정 의원은 2004년, 원내진출 직후부터 민생정책과 사회경제대안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해 왔던 기억이 난다.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는 일상적(전술적) ‘정책대안’과 전략적 ‘대안체제’의 결합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양자의 빈곤에 빠져있다. 민주노동당이 ‘비판’의 정당에서 ‘비전’의 진보정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물질적 생산물’이 필요하다” (프로메테우스, 2004.12. 16, 진보정치연구소 창립토론회, “대안적 사회경제체제의 모색”보도 중)
그리고 3년 후 심상정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민주노동당의 기존 정책을 현실에 맞추어 보다 정교화 하고 진일보 하게 발전시킨 여러 서민경제정책들. 그것을 모으는 프레임으로서 2002-2004년의 ‘분배를 통한 성장’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세박자 경제론”. 그리고 사회대안의 이행적 구상으로서 “사회공공체제”. 심상정이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 들고 나타난 꾸러미 속에 들어있던 것들이다.
심상정은 그렇게 3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이 당에게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스스로부터 준비하고, 일’로서 일과 그 결과로서 말한다.
<외부 전문가와 함께 '경제과외'를 하는 심상정 의원실>
3. 야전사령관, 계급적 직관
‘재테크는커녕 적금통장 하나도 제대로 부어본 적이 없다’는 삶을 살았어도, 경제문제에 대해 실력을 지니는 것이 노동자, 서민의 미래를 여는데, 진보정치의 앞날을 여는데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주위의 동지들을 채근하며 함께 밤을 밝혔다. 그렇게 기세등등한 모피아의 기를 꺾고, 삼성저격수, 한미 FTA 저지투쟁의 대표 정치인이 되었다. 그렇게 17대 국회에서 가장 경제에 강한 정치인과 의원실이 탄생했다.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고, 그것을 실천적 성과로 내놓을 수 있는 심상정의 모습은 대단한 것 이다. 생각해 보면, 구로동맹파업’ 주역에 ‘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이다. '운동경력'으로 따지면, 심상정은 살아있는 역사이고,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의 대선배의 한사람이 틀림없다. 그런데 살펴보면 그 사람이 지금 당내 경선 주자 중에는 가장 현대적인 진보노선에 적합한 후보로 보인다. 끈질기게 싸우고 버티면서도 현실이, 실천이 요구할 때 자기혁신 할 수 있는 그런 정치인, 흔치 않다.
나는 그 기반이 다른 무엇보다, 항상 자본과 맞서는 최전선의 야전사령관으로 살아온 심상정의 “계급적 직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본 측의 상황과 전략 그리고 노동조합의 조직역량을 분석할 능력이 없이 투쟁과 교섭을 지도할 수는 없다.
정치라는 더 큰 판에서, 총자본과 그들의 최고위급 ‘기능자본가’들을 상대할 때도 심상정은 역시 계급적 직관을 통해 상대의 상황과 전략을 분석하고, 그 허점을 파고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과 대안을 준비해왔다.
당연히 ‘우리’의 조직적 정치적 역량에 대해서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심상정은 그것을 단지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슬로건에서 끝내지 않는다. 심상정은 그 메시지를 실력 있는 진보정당, 노동자, 서민의 삶에 착근할 수 있는 진보정당을 만들 구체적 구상 - “강한 민주노동당”과 “비정규정당”의 프로그램을 통해 말한다.
투쟁으로서 대선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 당의 대선후보라면, 진보의 야전사령관이 필요하다면 심상정 에게 맡겨라. 신자유주의 지배동맹에 맞선 대반격을 이끌 자리에 이제 전 민중의 ‘투쟁국장’심상정을 호출하라. 기업레벨이건 정부레벨이건 가릴 것 없이 갖가지 ‘CEO’들과의 싸움에 이력이 난 심상정 보다 민생경제대선을 돌파할 적임자가 어디 있으랴.
<이랜드 홈에버 점거 현장에서>
4. 진보의 느티나무
월간중앙 2005년 4월호에서 심상정 후보를 인터뷰한 정치학자 전인권 씨는 자신이 느낀 심상정을 “느티나무”에 비유한다.
“나는 심상정이 ‘한 그루 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녀 역시 나무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역사가 나무를 연상시켰다. 나무라면 마을 사람들이 그 밑으로 모여드는 느티나무요, 그 나무는 앞으로 얼마나 더 크게 자랄지 알 수 없는 튼튼한 나무라고 생각했다....”
(당내경선 동안 오차범위 국민지지율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며 ‘도토리 크기로 참나무를 가늠할 수 없다’고 비판 했는데, 심상정은 아예 “느티나무”였던 모양이다. 느티나무 씨앗은 처음에는 4mm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가까이서 본 사람들, 오래 본 사람들은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어쩌다 짧은 뉴스에서 마주친 이들은 당연히 짧은 한 두 마디 인상을 말한다.
그러나 ‘심상정’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공통된 것은 언제나 치열한 열정과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노력하고 그 결과로 말해 온 운동가요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서민대중의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 그 열정과 노력을 분명 무엇 인가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을 실력으로 표현하는 정치인. 정치인이, 정치세력이 대중에게 그보다 더 분명한 감동과 신뢰를 그 무엇으로 줄 수 있다는 말인가.
5. 앞을 보자, 심상정이 있다.
“1980년 구로공단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노동자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공순이·공돌이였지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고 나니 초·중·고 교사,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간호사, 교수까지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선생님을 노동자라고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지요. 2000년 이후에는 노동자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공무원도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입니다. 저는 이것을 다 지켜보았고, 앞으로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지켜볼 것입니다.”
당원여러분,
여전히 뒤만 돌아보며 문 쪽에서 누가 들어오나 쳐다보는 분들도 있다.
앞을 보라.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노동자, 서민의 승리를 위해 싸움을 주도 할 사람은 이미 앞에 서 있다. 서민대중의 고통과 공포의 나날을 끝내기 위한 투쟁을 이끌 당의 대표주자, 전 민중의 투쟁국장, 심상정이 앞에 서 있다.
아직 혼란스러운가? 그럼 심상정 의원의 한마디를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바른 이치를 선택합니다. 그럴 때 저에게 묻습니다. 겉모양이 아니라 네 양심과 마음에 거리낌이 없느냐고? 그러면 답이 나오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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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bulkim
진보의 느티나무-"심상정"
